어제 미국과의 경기에서 애석하게 패배한 한국 대표팀이 전열을 정비하고 남미의 강호 도미니카 공화국을 오늘 만났다. 오늘 경기에서 패배한다면 메달과는 멀어진다. 오늘부터는 배수의 진을 치고 임해야 한다.
직전 경기에서 이스라엘은 멕시코를 12 : 5 로 크게 누르고 한국과 도미니카의 승자를 기다리고 있다. 한국이 오늘 도미니카를 이기면 다시 한번 이스라엘과 승부를 치뤄야 한다.
오늘 선발 매치업은 신인과 백전 노장의 매치업이다. 한국의 선발 투수는 2002년 생 이의리고 도미니카는 77년 생 라울 발데스다.
1회 초 이의리는 도미니카의 1, 2 번 타자에게 연속 안타를 허용하며 무사 1, 3루의 위기를 맞았다. 제 아무리 담력이 센 이의리라 하더라도 대표팀 유니폼의 무게는 이런 위기에서 담담할 수 없었다. 도미니카의 가장 강한 타자로 알려져 있는 3번 타자 훌리오 로드리게스를 맞아 낮은 공 승부를 펼치던 이의리는 낮게 던진 공이 폭투가 되며 1점을 너무 쉽게 헌납했다. 계속된 무사 2루의 위기에서 이의리는 스스로 살아났다. 로드리게스를 패스트볼로 삼진을 잡으며 자신감을 되찾은 이의리는 도미니카의 4번 후안 프란시스코와 5번 호세 바티스타를 범타와 삼진으로 잡아내며 위기를 벗어났다.
1회 말 한국의 1번 박해민과 2번 강백호도 안타를 치며 분위기를 다잡았다. 3번 이정후까지 볼넷으로 걸어나가며 무사 만루의 찬스를 만들었다. 도미니카의 선발 라울 발데스는 한국 대표팀의 거센 저항에 다소 당황한 듯 보였지만 백전노장다운 위기 관리 능력을 보여주며 후속 타자들을 잡아냈다. 4번타자 양의지의 희생 플라이로 동점을 만든 것에 만족해야 했다. 젊은 한국 대표팀의 새로운 4번타자로 눈길을 모았던 강백호는 2번으로 자리를 옮기자 부담감을 털고 타격감을 끌어 올렸다.
도미니카의 선발 투수 라울 발데스는 2010년부터 2014년까지 5년 동안 메이저리그 5개 팀을 돌아다닌 저니맨이었다. 메이저리그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던 발데스가 자리를 잡은 것은 일본 프로야구에서 였다. 2015년 주니치에 입단한 발데스는 130km 중반 대의 포심과 커브, 체인지업을 변칙적으로 던지는 좌완 쓰리쿼터 투수로 일본 프로야구에 자리를 잡았다. 2018년 부터는 멕시코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선수다.
2회 초 이의리는 자신감을 회복한 것을 확인하며 삼자범퇴로 이닝을 넘겼다. 2회 말 1사 이후 허경민은 좌중간을 향하는 큼직한 2루타로 장타 시위를 했지만 후속 타자들의 불발로 홈을 밟지는 못했다.
3회 말 맥 없이 투아웃을 당한 한국 대표팀은 2사 이후 김현수가 우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를 만들며 출루했지만 후속 오재일이 삼진을 당하며 추가점을 만들지 못했다. 발데스는 위력적인 구위는 없지만 좌우타자의 아웃 코스를 잘 활용하며 노련하게 승부를 했다. 결은 다르지만 문득문득 좌완 레전드 송진우의 모습이 엿보이기도 했다.
4회 초 도미니카는 선두타자로 나온 3번타자 훌리오 로드리게스가 좌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를 치고 나갔다. 이번 올림픽에서 한국 선발 투수들은 잘 던지다가 3회 또는 4회에 큰 것 한방을 허용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불안감이 엄습했다. 불안한 생각은 어김없이 들어 맞았다. 4번타자 후안 프란시스코는 치는 순간 중견수 박해민을 얼어 붙게 하는 큼직한 중월 홈런을 날렸다. 프란시스코는 전형적인 공갈포 타자다. 맞기만 하면 홈런이기 때문에 도미니카 윈터리그의 최고 인기 선수였지만 메이저리그에서는 배드볼 히터(선구안이 나쁜 타자)로 헛스윙을 허우적 거리다 여러팀을 전전했다. 2015년 일본 요미우리에 입단하며 야구 인생에 전환기를 맞을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했지만 일본 야구를 얕잡아 보다 좋은 성과를 올리지는 못했던 선수다. 이런 프란시스코에게 한방이 걸리며 점수는 3 : 1 로 벌어졌다. 이번 올림픽에서 홈런을 너무 많이 얻어 맞고 있다.
5회 초를 이의리는 삼자범퇴로 막아냈다. 3실점한 것이 아쉽기는 했지만 이번 올림픽에서 선발투수로는 처음 5회까지 던졌다. 대표팀의 막내가 5회를 버텨 주며 자기 몫을 다했다. 5회 말 선두타자 강백호는 볼넷을 골라 출루했다. 3번타자 이정후는 투수 옆을 스쳐가는 좋은 방향의 땅볼을 만들어 냈지만 유격수를 뚫어 내지는 못했다. 병살타로 연결했지만 전력 질주한 이정후가 1루에서 세이프가 되었다. 1사 1루에서 4번타자 양의지는 잘 맞은 타구를 보냈지만 우익수 정면으로 향했다. 김현수는 엉덩이가 빠진 상태에서 방망이에 맞은 공이 유격수 옆을 꾀뚫은 안타가 되었다. 2사 1, 2루의 찬스를 만들었지만 오재일이 힘없는 외야 뜬공을 치며 점수를 뽑아내지는 못했다.
6회 초 한국은 마운드를 조상우로 교체 했다. 조상우는 두 타자를 쉽게 잡아 냈지만 5번 타자 호세 바티스타에게 너무 신중한 투구를 보이다 볼넷을 허용했다. 2사 이후였지만 에릭 메히하는 짧고 날카로운 스윙으로 중전 안타를 만들어 냈다. 안타에 바티스타는 3루까지 안착했다. 2사 1, 3루의 위기에서 조상우는 찰리 발레리오를 1루 땅볼로 잡아내며 위기를 넘겼다. 6회 말에도 발데스는 마운드에 올랐다. 공은 이미 100개가 넘어섰다. 45살의 투수에게 대한민국의 정상급 타자들은 자존심을 너무 구겼다. 선두타자 오지환은 공과 한참이나 차이가 나게 방망이를 헛돌리며 삼진을 당했다. 첫 경기 이스라엘 전에서 보여 주었던 불타는 타격감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허경민은 3루 라인을 타고 가는 2루타성 타구를 날렸지만 좌익수 바티스타의 좋은 어깨에 2루까지 가지 못하고 1루에 머물렀다. 역시 바티스타는 바티스타다. 잘 맞은 안타가 오랜만에 나오자 도미니카의 벤치는 마운드를 레이예스로 교체했다. 황재균은 바뀐 투수 레이예스의 공을 잘 때렸지만 큼직한 외야 플라이로 처리되었다. 후속 박해민마저 레이예스를 공략하지 못하고 외야 플라이로 아웃되어 아쉬운 6회 말이 끝이 났다. 3 : 1 로 끌려가는 경기는 어느덧 후반부로 접어 들었다.
7회 초 조상우는 다시 마운드에 올라 한 타자를 처리하고 마운드를 고우석에게 넘겼다. 고우석은 2명의 타자를 잡아내며 무실점을 이어갔다. 7회 말 도미티카는 투수를 다시 알바레즈로 교체했다. 불펜이 약하다는 평을 받고 있는 도미티카는 다양한 불펜을 가동하며 한국 대표팀의 득점을 막아내고자 했다. 선두타자 강백호는 3루 땅볼로 돌아섰다. 이정후는 풀카운트까지 가는 접전을 벌였지만 좌익수 플라이로 물러섰다. 출루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한국 대표는 양의지도 풀카운트 접전을 벌이며 볼넷을 얻어냈다. 한국팀은 패배의 기운이 다가옴을 느끼며 급해지고 있었다. 2사 1루에 나가 있던 양의지가 어정쩡한 주루 플레이를 보이며 견제에 걸려 횡사 당했다. 빠른 선수가 아니였기 때문에 도루를 노렸던 것 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마음이 급한 것이다.
고우석은 8회 초에도 마운드에 올라 한 타자는 잘 처리했지만 1사 이후 3번타자 훌리오 로드리게스에게 안타를 맞고 차우찬과 교체되었다. 차우찬은 오늘 홈런을 친 바 있는 프란시스코 한 타자를 1루 땅볼로 처리하고 박세웅에게 마운드를 다시 넘겼다. 한국은 오늘 경기에 모든 것을 걸었다. 박세웅도 바티스타를 1루 파울 플라이로 처리하며 이닝을 마무리 했다. 8회 말 도미니카는 마운드를 호세 디아즈로 교체했다. 37살의 노장 불펜으로 메이저리그 풍부한 불펜 경험이 자산인 투수다. 그러나 육중해진 몸매 만큼이나 세월은 어쩔 수 없나 보다. 100마일을 육박하던 그의 패스트볼은 사라진지 오래다. 선두타자 김현수가 무사에 안타를 만들어 내며 이닝을 시작했다. 그러나 장마철 습기에 잔뜩 물 먹은 방망이는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오재일은 디아즈의 슬라이더에 헛심을 돌리며 삼진 아웃 당했다. 오지환은 힘차게 방망이를 돌렸지만 뻗어나가지 못한 공은 우익수 플라이로 물러났다. 무사 1루의 찬스는 2사 1루로 바뀌었다. 허경민의 타구도 우익수를 넘어가지는 못하는 평범한 뜬공이 되었다. 이제 진짜 9회 한 이닝이 남았다.
9회 초 박세웅은 선두타자를 처리하지 못하고 볼넷으로 출루시켰다. 한국 벤치는 마운드를 오승환으로 교체했다. 오승환은 마운드에 올라 거푸 1루 견제구를 던졌고 2번째 던진 공이 뒤로 빠지며 1루 주자가 3루까지 진루했다. 무사 3루의 위기에 몰렸다. 7번타자 찰리 발레리오는 전진 수비를 하고 있던 유격수에게 힘없이 굴러가는 땅볼로 소득없이 아웃되었다. 8번타자 헤이슨 구스만 역시 발레리오와 똑같이 아웃 당했다. 2사 이후 9번타자 예핀 페레스마저 힘없는 1루 땅볼로 돌아서며 한국 대표팀은 큰 위기를 무실점으로 넘겼다.
9회 말 대한민국은 기적을 만들 수 있을까? 답답한 경기에 돌파구를 만들기 위해 대타 최주환이 올림픽 무대 첫 타석에 섰다. 마운드는 도미니카가 자랑하는 마무리 루이스 카스티요다. 최주환은 타석에 서자 마자 초구를 받아쳐 2루 방면 내야 안타를 치고 출루에 성공했다. 대주자 김혜성으로 주자를 교체하고 김혜성은 2루 도루를 성공하며 득점 찬스를 만들었다. 박해민은 컨택 위주의 타격으로 1타점 안타를 만들었다. 9회가 뜨거워 지기 시작했다. 강백호는 크게 튀어 오르는 2루 땅볼로 박해민을 2루로 보냈다. 1사 2루에 찬스에서 이정후가 타석에 섰다. 믿는 타자 이정후는 끈질기게 카스티요를 물고 늘어졌다. 결국 좌익수 라인 방면으로 밀어친 2루타를 작열시키며 박해민을 홈으로 불러 들였다. 경기 내내 끌려 다니다가 9회 말이 되어서야 3 : 3 동점을 만들었다. 계속된 1사 2루 찬스에서 4번타자 양의지가 타석에 섰다. 양의지 역시 끈질긴 승부 끝에 2루 땅볼로 2루 주자 이정후를 3루로 보냈다. 2사 3루에서 김현수는 경기를 끝내는 우익수 키를 넘기는 안타를 날렸다. 오늘의 영웅은 캡틴 김현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