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각 4월5일 LA에인절스의 오타니 쇼헤이는 메이저리그 역사에서도 보기 드문 선발투수 겸 2번타자로 등장했다. 선발투수가 2번타자로 나선 것은 메이저리그에서도 118년 만에 일이라고 하니 희귀한 일이기는 한가 보다. 118년 전인 1903년 카디널스의 잭던리비가 선발투수 겸 2번 타자로 나왔다고 하는데 당시 잭던리비는 번트능력이 좋고 발이 빨라 2번타자로 나오는 실험을 했던 것이지 요즘처럼 강한 2번타자로 공격력 배가를 위한 배치와는 거리가 먼 전술이었으니 선발투수가 2번타자로 나왔다는 사실만 가지고 두 사례를 비교하는 것은 그 자체로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찌되었든 오타니는 마운드에서는 100마일(약 160킬로)의 강속구와 92마일(약148킬로) 스플리터로 시카고 화이트삭스 타자들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일은 1회말 오타니의 첫타석에서 일어났다. 시카고화이트삭스의 선발투수 딜런시즈(Dylan Cease)의 97마일(약 156킬로) 속구를 어마어마한 힘으로 휘둘러 우중간 담장을 훌쩍 넘겨 버렸다. 이 홈런볼의 타구 속도가 180킬로가 넘었다고 하니 정말 어마무시한 홈런이었다. 홈런을 맞은 딜런시즈는 19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해서 작년부터 화이트삭스 선발로테이션의 한자리를 차지한 투수로 작년 단축 시즌에도 5승4패의 준수한 성적을 거둔 신예투수임으로 구질이 허접한 공을 운좋게 친 홈런이라고는 절대로 평가 할 수 없다. 2회말 타석에서도 중견수 정면으로 가기는 했어도 잘 맞은 공을 만들어 냈으며 마운드에서는 4회까지 훌륭한 모습을 보였다. 5회 마운드에 오른 오타니는 잘 던지고도 황당한 일들을 겪으며 결국 교체되었다. 애덤 이튼과 호세 아브레유 같은 강타자들에게 연속 포볼을 주어 2사 만루를 만들어 준 것이나 이런 상황에서 폭투를 던져 1실점 한 것까지는 오타니의 실책이라 하겠으나 이후 스윙 삼진으로 5회를 끝낸 상황에서 포수가 볼을 빠뜨려 추가로 1실점을 한 것이나 빠진 공을 포수가 1루에 악송구하는 바람에 2루 주자 아브레유까지 홈으로 들어오게 된 것은 어이 없었다. 실점 상황과 상관없이 더 황당한 것은 홈으로 뛰어들던 아브레유와 홈으로 백업 들어온 오타니가 충돌하면서 오타니가 부상으로 교체되기에 이른 것이다. 한순간에 3실점하고 부상(나중에 보니 경미한 부상으로 보여 다행으로 생각한다.)으로 5회를 마무리하지 못하고 교체되는 허망한 순간이 연출된 것이다. 예전에 박찬호나 서재응, 김선우 같은 선수들이 메이저리그에서 뛸때 다른 경기에서는 견고하던 야수들이 이상하게 황당한 에러를 연속하면서 경기를 가져오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보았었는데 이번에도 동양 용병이 호투하는 상황에서 석연치 않은 에러가 연속되어 아쉬움이 컸다. 이런 현상들은 우연한 일이거나 내가 예민해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하려 한다. 어찌되었든 오타니에게는 두고 두고 아쉬운 4월5일 경기였을 것이다.
오타니 쇼헤이는 1994년 생으로 앞으로 그 성장이 더욱 기대되는 선수다. 키가 195센티미터로 메이저리그에서도 체구적으로는 그리 딸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투구 시나 타격 시에 류현진에게도 뒤쳐지지 않는 유연성을 보이고 있어 롱런할 것으로 예상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우리에게는 2015년 '프리미어12'에서 일본의 선발투수로 나온 오타니가 7회 교체될 때까지 삼진 10개를 뽑아내며 무시무시한 투구를 보이고 한국대표는 일본대표에게 5:0으로 진 악몽을 대표적인 사건으로 오타니를 기억하고 있지만 사실 오타니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그 천재성을 꽃피우고 있었다. 투수보다는 타자로써 먼저 인정 받은 오타니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이미 팀의 2,3학년 선수들을 제치고 4번타자를 맡았다. 고1 후반기가 되어서야 투수를 시작했는데 당시에는 타자를 먼저 시작해서 인지 투수로써의 재능보다는 타자로써의 재능을 더 인정 받았다. 일각에서는 단기전 성적보다는 선수 양성에 힘썼던 사사키 요우 감독을 고등학교 은사로 만난 덕을 보았다는 평가도 있는데 사사키 요우 감독은 고시엔 대회에서 고교 우수 투수들이 혹사되어 프로에서 꿈을 접는 선수들을 보면서 투수로써도 재능을 보이는 오타니가 고교 시절 '신체적으로도 성장하고 있는 단계이니 투수 훈련은 천천히 시간을 두고 육성을 하면서 우선 타자로 기회를 더 주겠다.'고 하였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오타니는 고3까지 투수로는 간간이 나왔을 뿐이고 대부분은 발빠르고 파워있는 우수한 타자로 활약했다. 그러나 천재의 재능은 감추려고 해도 감출 수 없는 것이었을까? 고3 여름리그에서 160킬로미터의 강속구를 던지면서 세상의 주목을 한몸에 받는다. 재미있는 것은 오타니는 고2때까지 거의 투수로 나오지도 않았고 고2 때는 구속은 좀 괜찮은 편이었지만 컨트롤이 되지 않아 가운데로 몰리거나 스트라이크를 잘 던지지 못하는 투수 였음에도 이미 전문가들은 오타니는 '투수'로 점찍었을 뿐만 아니라 고교 투수 최대어로 손꼽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고3이 되어 구속이 160킬로미터가 넘었으니 일본 야구계는 오타니라는 대형 투수의 등장에 환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고등학교 성적을 기반으로 더 큰물로 직행할 것을 꿈꾸었는데 바로 메이저리그로 직행이었다. 160킬로미터를 던지는 일본 고교생에 대한 메이저리그의 관심은 대단했었는데 오타니가 이 사실을 모를 일은 없었다. 그래서 오타니는 공공연하게 공식석상에서 '일본프로야구 구단은 본인을 지명하지 말아달라. 나는 일본 프로야구에서 뛰고 싶은 생각이 없다.'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훗카이도 니폰햄 파이터스는 2013년 드래프트 1순위로 오타니를 과감하게 강행 지명했다. 지명 후 니혼햄은 오타니를 설득하기 위해 모든 인적 네트워크를 동원한 것은 물론이고 일본 뿐만 아니라 한국을 포함해서 고등학교 유망주가 메이저리그로 직행했을 때 얼마나 성공률이 떨어지는 지와 국내 리그에서 경력을 쌓은 후 메이저리그에 진출했을 때의 성공 확률을 분석한 방대하고 정밀한 보고서를 작성하여 오타니 측에 제출했다고 하니 구단의 총력을 다한 것으로 보인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마침내 오타니는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내용이 많았다.'라며 메이저리그 진출을 철회하고 닛폰햄에 입단하였다. 단 입단 조건에 투타를 겸업하는 것을 명기하였다고 하니 투타겸업에 대한 오타니의 의지를 엿볼수 있다. 이후 메이저리그에 입단하기 전까지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시즌 동안 투수로써 42승 15패에 완투승 13회, 그 중 완봉승 7회의 성적을 거두었으며 타자로써는 403경기 출전 홈런 48개, 통산 2할8푼6리의 성적이었다. 투타를 겸업하다보니 재미있는 기록이 많은데 2016년 일본프로야구 퍼시픽리그 최우수 선수로 선발될 당시 투수와 지명타자 두 부문에서 베스트 나인에 선정되었다. 이 기록은 당연히 일본 프로야구 역대 최초의 기록이다.
오타니는 2018시즌 메이저리그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메이저리그에 진출한다. 일본에서 9년의 선수 생활을 채우고 자유계약선수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경우 연봉 상한선이 없어 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계약할 수도 있었으나 하루라도 빨리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싶었던 오타니에게 연봉 상한선과 같은 조건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오타니를 두고 메이저리그의 거의 모든 팀들이 경합하였으나 결국 오타니의 투타겸업에 가장 적극적으로 협조할 뜻을 밝힌 LA에인절스가 경쟁에서 승리하게 되었다. 이렇게 화려하게 메이저리그에 등장한 오타니는 2018시즌 준수한 성적을 거두었다는 평을 들으며 신인상을 수상한다. 그러나 나는 개인적으로 실패한 한해, 실패를 시작한 18년이라고 감히 생각한다. 왜냐하면 18년 6월말부터는 팔꿈치 염좌인지 인대 문제로 통증을 호소하며 마운드에 오르지 못하고 지명타자로만 출전했다. 결국 시즌이 끝나자 마자 수술대에 올랐다. 18년 그가 올린 성적은 투수로 4승, 타자로 2할8푼5리였다. 수술의 영향으로 19시즌에는 투수로는 마운드에 오르지 않는다. 타자로도 상당기간 나오지 못할 것으로 메스컴은 예상했지만 19년 5월 오타니는 지명타자로 타석에 들어선다. 나는 이 또한 무리수였다고 생각한다. 6월에는 동양인으로는 추신수 다음으로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하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지만 거기까지 였다. 오히려 무리로 인해 무릎 이상까지 오게 되었으니 아무리 오타니라 하더라도 어쩔 방법이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2020 단축 시즌 들어서는 투수로도 등장했으나 토미리존스 수술 여파인지 구속이 떨어지며 위력을 보이지 못했고 타격도 2할이 채 되지 않는 저조한 성적을 보이며 암울한 시즌을 보냈다. ESPN의 메이저리그 전문 기자는 '가장 과대 평가된 유망주'로 오타니를 뽑았으니 오타니에 대한 실망감이 얼마나 컸는지를 엿볼 수 있다.
18년 이후 이렇게 자신의 기대에 비해 저조한 성적을 거두고 있는 오타니가 드디어 건강하게 정상적으로 준비한 시즌이 2021시즌이기에 큰 기대를 가지고 4월5일 경기를 관람했다. 그 기대만큼 예전과 같은 161킬로에 달하는 속구를 던지고 처음부터 대형 홈런을 때리는 모습을 보여주어 내심 뿌듯했다. 그런 경기를 이런 식으로 망쳐 놓다니.. 너무나 아쉽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라 그런지 오타니를 보면 '그냥 하나만 하면 훨씬 잘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일본프로야구의 전설 장훈도 오타니가 프로에 들어왔을 때 '경쟁이 치열한 프로야구에서 투타겸업은 생존하기 어렵다. 오타니는 하나에 집중해야 한다.'라는 의견을 낸 적도 있다. 실제로 그의 일본프로야구 기록이나 지금까지의 메이저리그 기록은 평범하다 못해 그냥 그런 선수의 기록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직 모른다. 이제 20대 중반의 오타니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어떤 기록을 후세에 전할 지.. 그저 응원하고 지켜보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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