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2년 이전 리뷰/오늘의 프로야구 결과와 리뷰

2021시즌 프로야구 개막을 기다리며...

반응형

야구 개막을 기다리는 마음이 설레인다. 1982년 프로야구가 처음 시작할 때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이 때 부터 한해도 프로야구가 멈춤적이 없으니 매년 이 맘 때가 되면 열병을 앓듯이 두근두근 거리는 설레임에 산다.

 

1982년 프로야구 개막 경기. 내 기억으로는 MBC, KBS 모든 채널에서 중계했다.

 

초등학교 시절 우리집 근처에는 기자촌이라는 동네가 있었다. 그래서 인지 우리 반에는 아버지가 기자인 친구들이 꽤 많았다. (성인이 되어서야 기자촌이 기자들이 만든 마을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중 뿔테 안경 쓴 모습이 변신하기 전 슈퍼맨과 꽤나 닮았던 친구가 '아버지가 MBC기자이시니 MBC청룡 어린이 회원 가입을 현장까지 직접 가지 않고 아버지가 가입해 줄터이니 가입비만 가져오라.'고 하였다. 온라인이 없던 시기라 회원가입을 위해서는 직접 MBC본사로 가서 줄을 서서 한참을 기다린 후에 서류를 제출하고 가입비를 내야하는 꽤나 번잡스러운 일이었으니 나에게는 너무나 솔깃한 제안이었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었던 나는 그날부터 줄창 1주일 동안 엄마에게 회원 가입해야 하니 돈을 달라고 졸랐던 것으로 기억하나 결국 엄마를 설득할 수는 없었다. 기회가 무산되었다고 생각하던 즈음 오랜만에 외할머니가 우리집에 오시게 되었고 나라면 껌뻑죽던 할머니를 설득하는데 성공한 나는 어린이회원 바용을 만들 수 있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회원 가입비를 들고 친구 두명과 함께 정동 MBC를 찾은 날은 공교롭게도 회원가입 마지막날이었다. MBC앞은 그야 말로 인산인해였고 가입을 위한 줄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2시간 넘게 줄을 서서 기다리던 우리들은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게 된다. '아아..어린이 회원 가입을 위해 오신 분들에게 안내 말씀드립니다. 저희가 어린이 회원에게 준비한 회원상품이 모두 소진되어 더 이상 회원 가입을 받을 수 없으니 모두 집으로 돌아가 주시기 바랍니다.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친구들과 나는 정말 하늘이 노랬지만 이렇게 끝낼 수는 없었다. 다들 어렵게 만들어 온 회원가입비인데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 가입비를 돌려 드리기에는 그간의 공들임이 아쉬웠다.

 '야! 청룡만 팀이냐? 다른데 가자.'

 '오늘까지 회원가입 받는데는 MBC랑 삼미 밖에는 없는데 어쩌지?'

 '삼미는 인기가 별로 없으니까 오히려 잘 되었다. 거기로 가자!'

라고 해서 종로의 삼일빌딩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고 조금 붐비기는 했으나 MBC 앞 광장하고는 비교할 수 없는 한산함을 느끼며 우리 세명은 무사히 삼미슈퍼스타즈 어린이 회원이 되었다. 

 

 

어쩌면 문제는 이 때부터였는지도 모른다. 다른 팀의 어린이 회원들은 모두 야구 모자를 주었기 때문에 회원을 가입한 아이들은 다들 '나는 해태야.''나는 OB야.'라며 모자를 쓰고 다녔는데 삼미는 우산 모양으로 생긴 모자를 주는 바람에 도저히 쓰고 다닐 수가 없어 자랑하기는 커녕 애들의 놀림감이 되기 딱 좋았다. 응원하던 팀을 급하게 바꾸다 보니 선수 구성이 어떤지도 전혀 몰랐다. 야구를 무척 좋아했던 나 조차도 아는 선수가 양승관 정도에 불과하고 나머지 투수나 내야수는 아는 사람이 없었으니 개막할 때까지도 어찌보면 '샤이 삼미팬'으로 삼미를 응원하는 것을 숨겨야 했었다. 그러던 내가 삼미라는 팀에 푹 빠져서 아이들의 놀림에 맞서 싸울 정도의 열성 팬으로 변신하게 된 사건이 터졌으니 바로 대망의 82년 삼미의 개막 경기 였다. 

 

1982년 경향신문 기사 중에서

 

삼미의 개막 경기는 대구에서 삼성라이온즈와의 경기였는데 당시 삼성은 최강의 멤버를 자랑했었다. 투수는 황규봉, 이선희, 권영호라는 국내 에이스급 선수들에 국가대표급 유격수가 4명이 있었는데 서정환, 오대석, 함학수, 장태수가 경쟁했다. 지금으로 따지면 김하성, 김재호, 오지환, 이학주가 한팀에서 유격수 경쟁을 하는 모양새를 상상하면 된다. 다들 재능이 뛰어난 선수들이었기에 함학수는 1루로, 장태수는 중견수로 결국 전환하는 헤프닝까지 벌일 정도로 경쟁은 치열했다. 내야의 다른 자리도 모두 국대급이었으니 배대웅, 천보성, 김한근 이 정도의 레벨이었다. 외야 역시 틈이 없었는데 한방있는 정현발에 다재다능 허규옥까지 내가 지금까지 기억하는 선수들만 이 정도였다. 이런 팀과 대구라는 적지에서 삼미같은 팀이 싸워야 한다니, 이건 이미 결과가 뻔한 경기였다.아니 알고 싶지도 않은 결과 였다. 6학년 때 내 방이 대문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아침이면 턱하는 신문 떨어지는 소리가 잘 들렸다. 세상 온갖일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그 턱하는 소리가 나면 항상 신문을 주으러 뛰어 나갔다. 묘한 휘발류 냄새 비슷한 신문지 냄새를 맡으며 항상 내가 처음 펼치는 면은 물론 스포츠 였다. 오랜 시간이 지나 몇월몇일인지는 기억나지 않으나 충격적인 그 뉴스. 삼미가 첫 경기에서 삼성을 이긴 것이다. 솔직히 누군지도 잘 모르던 인호봉이라는 아저씨가 3실점 완투승을 거두었다는 얼떨떨한 뉴스의 짜릿함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 있다. 이 사건 이후 나는 삼미팬이 되었다. 전반 40경기, 후반 40경기를 치르는 한 시즌 중에 후반 리그는 아마 5승 정도 밖에는 올리지 못한 것으로 기억하는 데도 나는 삼미에 미쳐있었다. 개인 성적이 유일하게 상위권이었던 분야가 도루 부문이었는데 당시 1루수 조흥운이 해태의 김일권에 이어 도루 2위를 수상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친구들이 어느 선수가 잘한다고 이야기 할 때면 나는 조흥운이 최고라며 도루 순위 2위라고 침을 튀며 이야기 하고는 했었다.

 

그 때의 열정과 설레임은 아직도 그대로 인데 한국 프로야구도 40년이 되어간다. 2021시즌 프로야구부터는 내 시각으로 본 경기분석들을 몇몇 사람들과 공유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야구선수 출신도 아니고 누구에게 야구란 이런 전략과 전술로 게임을 한다고 배워본 적도 없는 그냥 애호가, 팬이기에 거창하게 시작하고 싶은 마음도 능력도 없다. 다만 오랜 시간 가슴에 두고 온 열정을 더 이상 감추기 어려워 조금 드러내 보고 싶을 뿐이다. 마치 오랜 경험의 해설자처럼 메모를 하며 야구를 지켜볼 2021년 야구 개막전을 기다리는 마음이 애닯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