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토목엔지니어이다. 그런 이유로 아버지는 나와는 다르게 공구 욕심이 대단하셨다. 어릴 적 아버지는 나에게 '이 드라이버는 독일제라서 뭉게지지가 않는데 한국에서 만든 나사는 영 상태가 안 좋아서 뭉그러져 버린다.'라며 공구 부심을 표현하시고는 하셨다. 이제는 우리나라 제품들도 내구성이 꽤나 좋아졌다. 나는 중국에서 10년 이상 파견 나가 근무한 경험이 있다. 한국인 공장장들은 늘 '중국산 수리 부품들은 못쓴다. 내구성이 너무 약해서 그냥 뻐드러져 버리니 말이다. 좀 비싸도 본사에 요청해서 한국 부품을 가지고 오는게 백배는 좋습니다.'라는 말을 했다. 어릴 적 아버지가 하시던 말씀과 참 비슷하다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있다. 이렇듯 내구성의 문제는 단기간에 무엇을 배껴 온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매우 오랜 기간 동안 관련 산업의 기반이 다져지고 기술력이 올라가야 해결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내구성을 뜻하는 체력도 이런 면에서는 비슷한 것처럼 보인다. 한국 사람은 백인, 흑인에 비하여 내구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이른 시기에 에이징 커브(나이로 인한 체력적 한계)가 시작된다라는 것이 예전에 통용되던 일반론이었다. 물론 인종적으로 체력적인 차이가 나는 것일 수도 있으나 예전에는 프로야구 선수들이 새벽까지 담배피며 술마시다가 바로 낮 경기에 출전했다는 무용담도 있었으니 프로선수로써 관리도 되지 않고 있었다.
한국 프로야구도 40년이라는 세월이 되어가면서 선수 관리 시스템과 선수 본인의 철저한 자기 관리가 성숙해 지면서 선수들의 내구 연한도 상당히 길어졌다. 최근에는 한국에서 성공하고 그 성공을 등에 업고 메이저리그에 스카웃되는 사례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강정호, 김하성, 황재균, 김현수 같은 야수부터 류현진, 김광현, 오승환과 같은 투수들이 그러하다. 이러한 현상을 한국 프로야구의 위상이 높아진 것으로 보는 것도 당연하지만 한국에서 FA를 취득하고 미국에 진출하려면 일반적으로 30줄은 넘겨야 하는 나이가 됨으로 내구성이 개선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양현종은 1988년 생이니까 올해 30대 중반으로 넘어가는 적지 않은 나이다. 야구 명문 광주동성고 출신인데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야구팬이라면 동성고라는 이름보다는 2001년 이전의 이름인 광주상고라는 이름에 익숙할 것이다. 광주상고하면 강자 중에 강자 해태타이거즈의 김종모, 이순철, 장채근, 홍현우를 떠올리는 올드팬들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광주동성고를 대표하는 투수는 2000년대 중반 고교야구를 주름 잡았던 한기주와 양현종이라 할 것이다. 한기주는 고교시절의 혹사가 항상 논란이 되어 프로시절에는 부침이 있었으나 양현종은 2007년 2차1라운드로 기아에 지명된 이후 14시즌 동안 총 425게임에 나와 147승 95패의 성적을 거두어 평균적으로 매년 10승 이상 팀에 기여하는 이닝이터 에이스의 역할을 수행했다. 팀도 양현종의 이런 역할에 맞게 2020년 연봉이 23억에 달하는 속칭 남부러울 것 없는 투수였다. 이런 그가 21년 아무런 계약적인 보호없이 메이저리그에 도전한다라는 뉴스를 보고 나는 충격에 빠졌었다. 가만 있으면 대우 받으면서 23억 이상 꾸준히 받을 수 있는데 말도 안통하고, 신인처럼 비위 맞추면서, 강력한 경쟁자들을 이겨서 메이저리그에 남아야 옵션까지 포함해서 20억 정도 받을 수 있는 불리한 계약 게다가 안되면 내년이라도 정처없이 돌아와야 하는 그 길을 양현종은 떠난 것이다. 한분야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주위의 사람들이 도전보다는 안정을 취하는 모습을 자주 보는 나이라서인지 이러한 양현종의 도전은 신선하다.
나는 사실 양현종의 MLB안착에 대해 비관적인 입장이었다. 김광현의 메이저리그 성공도 코로나로 인한 메이저리그의 단축 운영 영향이 꽤 작동한 결과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성공이 조금은 과장되어 있다고 생가한다. 이런 김광현과 비교했을 때 양현종의 구질이 김광현에 비해 그리 뛰어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메이저리그가 운용되는 2021시즌 양현종의 성공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이런 나의 생각은 그리 특이한 관점은 아니었는지 양현종의 현지 언론의 평가는 매서울 정도로 박했었다. 그러나 양현종은 대단했다. 거의 매주 솎아내는 메이저리그 캠프를 한달이상 버텨내면서 메이저리그 잔류 가능성을 10:1, 5:1, 3:1 순으로 줄여갔다. 양현종의 잔류 때문만으로 생긴 고민은 아니라 할지라도 텍사스는 양현종의 잔류를 결정짓지 못하고 최종엔트리를 개막전 당일 발표하는 장고를 거듭했다는 것만으로도 양현종의 가치가 시간이 갈수록 높아졌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결국 양현종은 예비엔트리니 택시스쿼드로 원정 동행을 했니 하지만 결국은 최종엔트리에서 떨어졌다. 양현종 대신 최종엔트리에 들어간 콜비 알라드가 텍사스 개막 경기에서 부진한 성적을 거두자 이에 대한 말들이 많다. 한마디로 '장고 끝에 악수 둔다.'라는 식으로 양현종에 대한 아쉬움을 쏟아 내고 있다. 사실 양현종때문에 콜비 알라드가 욕을 먹고는 있지만 콜비는 그리 만만한 투수는 아니 것으로 나는 기억하고 있다. 2015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14번 순위로 아틀란타 브레이브스에 지명되었을 정도로 주목 받는 신인이었으며 2016년에는 유력 언론이 뽑은 '기대되는 신인 10인'에 선정되기도 할 정도로 96마일 정도의 준수한 속구와 A급으로 평가 받는 각이 큰 커브의 소유자이다. 그만큼 양현종의 경쟁자들은 강력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지켜본 나는 양현종의 싸움닭같은 투쟁심을 믿게 되었다. 아니 그런 도전을 응원하게 되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양현종, 화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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