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현이 부상에서 돌아와 4이닝 1실점으로 잘 던지고도 64구 만에 교체 되었다. 이를 두고 한국의 언론들은 김광현이 벤치의 신임을 잃었다는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내 개인적인 관점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선발 투입 전 부터 세인트루이스의 마이크 쉴트 감독은 '예정된 투구수가 있다.'라며 관리 중에 있음을 표명했다. 김광현은 젊은 시절 혹사 논쟁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투수다. 한국을 대표하는 에이스로 정말 많은 이닝을 소화했을 뿐만 아니라 현재 나이도 예전 같으면 투수 황혼기에 접어 들었다. 김광현의 주무기가 어깨나 팔꿈치에 부담을 덜 주는 슬라이더 일뿐더러 상체 위주의 투구가 아니라 몸 전체를 사용하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버텨 왔다고 할 수 있다. 사실 메이저리그 입성하기 몇 해 전 부터 풀타임 선발이 조금 버거워 보이거나 부상 이탈을 경험한 적이 있는 김광현이다. 세인트루이스의 벤치가 이런 사실을 모를리 없다. 현재 선발진이 그리 부족해 보이지 않는 세인트루이스의 입장에서 보면 6승 6패로 짭짤한 효용 가치를 보이고 있는 김광현에게 무리를 시킬 이유가 없다. 오늘 선발 투입은 오히려 김광현에 대한 벤치의 신뢰를 보여준 것이 아닐까 싶다.
오늘 김광현에 맞선 피츠버그의 선발투수는 윌 크로우다. 크로우는 올 시즌 전 피츠버그 유망주 순위 24위로 피츠버그 마이너에서 뛰고 있는 야수 배지환보다 10위 정도 아래에 있는 유망주로 평가 받았다. 그러나 선발 라인업 자체를 완전히 갈아 엎으며 올 시즌 본격적인 리빌딩을 하고 있는 피츠버그의 상황에 따라 크로우는 20경기에 선발로 나와 3승 7패의 선발 수업을 꾸준히 밟고 있다. 배지환이 아직 메이저 물을 전혀 마셔보지 못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파격적인 대우다.
오늘 피츠버그의 선발 윌 크로우를 부순 것은 토미 에드먼이다. 에드먼은 어머니가 한국계라는 이유로 한국에 많이 알려져 있는 선수로 체구는 크지 않지만 놀라운 운동능력과 '엘리트'라고 불리울 정도로 좋은 두뇌를 바탕으로 세인트루이스 내야 주전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선수다. 에드먼은 3회 2루타로 1득점을 올렸고, 5회에는 2점 홈런으로 2타점을 올려 오늘 세인트루이스가 올린 3점 모두에 관여했다.
김광현은 3회까지 큰 위기 없이 안정적인 투구를 보였지만 4회 무사에 3연속 안타를 맞으며 흔들렸다. 그러나 후속 타자를 삼진으로 잡고 츠츠고에게 희생플라이 1타점을 허용했지만 무사 만루의 찬스를 1실점으로 막아내는 위기 관리 능력을 보여 주었다. 아마 김광현에게 오늘 맡긴 투구수는 70개 였던 것으로 보인다. 64개로 4회 초를 마치자 4회 말 선두타자 김광현 자리에 맷 카펜터 대타를 기용하며 김광현의 오늘 활약에 마침표를 찍었다.
8회 말 데뷔 이후 거의 모든 시즌(8회) 골든글로브를 거머쥔 3루수 놀란 아레나도의 놀라운 수비가 빛을 발하며 오늘 경기는 세인트루이스가 피츠버그를 3 : 1로 제압하는가 싶었다. 그만큼 아레나도의 수비는 대단했다. 수비 시프트로 유격수 자리에 자리한 3루수 아레나도는 3루와 유격수 사이를 가르는 강습 땅볼을 몸을 날려 잡은 뒤 앉은 자세로 1루 송구를 해 타자를 잡아냈다. 수비라면 일가견이 있는 골든글로브 출신 1루수 골든슈미트는 우측으로 치우친 아레나도의 송구를 거의 누운 자세로 포구하며 발이 1루 베이스에서 떨어지지 않아 아레나도의 멋진 수비를 뒷받침했다. 그러나 문제는 9회 말 이었다.
9회 말 세인트루이스는 2점차 승리를 지키기 위해 마무리 레이예스를 마운드에 올렸다. 레이예스는 구질 하나만으로는 메이저리그를 씹어 먹고도 남을 정도의 선수이지만 매 경기 볼넷으로 아슬아슬한 경기를 한다. 그러나 워낙 구질이 좋기 때문에 볼넷으로 무사 만루를 허용하고도 연속 삼진으로 실점하지 않는 경기가 여러차례 있을 정도로 탁월한 승부사다. 오늘도 3번과 5번타자에게 볼넷을 허용하며 1사 1, 2루의 위기를 자초했다. 타석에는 어느덧 저니맨이 되어 버린 쓰쓰고가 섰다. 쓰쓰고는 일본리그 요코하마를 대표하는 홈런 타자 였지만 메이저리그로 올 때 이미 전성기가 지나 패스트볼 적응에 문제점이 노출된 선수였다. 탬파베이-LA다저스를 거치며 이미 퇴물 취급을 받던 쓰쓰고가 피츠버그로 이적하면서 13경기에 나와 벌써 5개의 홈런을 날리며 조금씩 자신의 명성을 되찾아 가고 있는 요즘이다. 레이예스는 그런 쓰쓰고를 너무 가볍게 본 것 같다. 초구 어정쩡한 높이로 들어온 공을 통타한 타구는 외야 관중석의 상단의 상단을 때리는 큰 끝내기 3점 홈런이 되었다. 경기는 3 : 4 로 피츠버그가 가져갔다.
김광현 때문에 눈을 부비며 보았던 새벽 경기가 쓰쓰고의 명품 끝내기 쓰리런 홈런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역시 야구는 끝날 때 까지 끝난 것이 아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