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부터 한국 프로야구에서 외국인의 중요성은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중요해 졌다. 잘난 외국인 타자 하나면 팀의 기둥이고 외국인 투수는 모두 한팀의 에이스들이다. 그런 면에서 키움은 샌즈 이후 외국인 타자 때문에 고생을 면치 못했다. 다른 재벌 그룹이 뒤에 받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늘 외국인 선수를 수급함에 있어 '가성비'를 제일의 미덕으로 생각하는 키움은 늘 거물급 타자를 손에 넣지는 못했다.
2020년 키움은 가성비 중시인지 최저 연봉 중시인지는 모르겠으나 메이저 경험이 없는 만능 유틸리티 선수 테일러 모터를 영입했다. 모터는 소개 당시 포수빼고는 전 포지션에 활용 가능한 선수라 했으니 수비 능력은 어느 정도 갖춘 선수로 평가 받았다.
테일러 모터는 2011년 신인드래프트를 통해 탬파베이 산하 마이너리그에서 뛰었다. 2016년 이전까지 메이저리그를 밟지 못했지만 루키-더블A-트리플A를 단계별로 밟고 2016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그러나 33경기에 뛰었을 뿐 대단한 활약은 없었다. 2016년 말 시애틀로 유니폼을 바꾸어 입고 2017년 가장 많은 메이저리그 경기에서 뛰었다. 92경기에 출전하여 .198의 타율을 기록하며 주로 대수비 요원으로 뛰었다. 2018년 미네소타로 다시 한번 이적했지만 메이저리그에서 모터를 보기는 어려웠다.
테일러 모터는 수비력은 어느 정도 입증된 선수였지만 타격이 좀 처럼 되지 않는 선수였다. 물론 수비도 유틸리티라는 강점이 있었을 뿐 빅리그의 주전으로 뛸 정도의 수비력은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2020년 한국행 비행기를 탄 모터는 스프링캠프에서 '한국에서는 통할 수준의 타격과 준수한 수비를 갖춘 선수'라는 자체 평을 들으며 친화력을 바탕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뚜껑을 열자 역시 타격이 문제였다. 단 10경기를 뛰며 35타수 4안타(1홈런 포함) 타율 .114의 참담한 기록을 남기고 5월 마지막 날 퇴출되었다. 야구보다는 오히려 여자친구와의 설화가 더 많이 보도되며 한국팬들에게 이미지 마저 좋지 않게 떠났다.
그렇게 끝날 줄 알았던 모터가 2021년 콜로라도와 계약을 맺으며 야구계에 복귀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사실 한국에서 보여준 그의 야구 수준으로는 재기가 어려울 줄 알았는데 의외의 소식이었다. 본인도 야구를 그만 두고 새로운 직장을 찾았다고 하니 야구계를 떠날 것이라는 나의 추측이 너무 나간 생각은 아니었던 것 같다.
콜로라도 산하 마이너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다시 시작한 모터는 달라진 몸집 만큼이나 타격도 달라져 있었다. 한국 프로야구계의 한 때 유행이었던 '몸집 키우기'를 시도하여 타구 속도를 높이고 펀치력을 늘린 모터는 타격 부문에서 장족의 발전을 보이며 트리플A를 씹어 먹었다. 7월 30일까지 트리플A 67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335, 홈런은 무려 24개를 날렸다. 트리플A 서부리그 홈런 1위의 기록이다. 트리플A에서의 맹활약을 바탕으로 모터는 메이저리그로 콜업되었다. 8월 11일부터 30일까지 모터에게는 꿈같은 빅리그 생활이었지만 날으던 타격감은 자취를 감추었다. 10타수 3안타의 초라한 성적을 남기고 다시 한번 퇴단의 아픔을 겪었다. 사실 오늘 전까지 내가 알던 모터는 여기까지 였고 이렇게 다시 한번 야구 선수로의 꿈이 꺾이는가 싶었다.
그러나 모터는 참 운이 좋은 선수인가 보다.
최근 코로나로 주전선수 4명을 포함 8명의 결원이 생긴 보스턴이 모터를 데려간 것이다. 코로나로 빠진 보스턴의 주전 선수는 이름만 들어도 대단한 자원들이다. 타격과 수비의 핵 잰더 보가츠, 만능 유틸리티 키케 에르난데스에 야이로 무노즈와 크리스티안 아로요까지 팀 전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선수들이 빠지면서 이를 매우기 위해 유틸리티맨 모터를 영입한 것이다. 결원이 큰 만큼 바로 빅리그에 합류할 확률도 있다고 하니 모터로써는 마지막 천금같은 기회가 될 지도 모르겠다.
좋은 기억보다는 나쁜 기억이 많은 모터지만 한국에 다녀갔다는 인연 하나로 그의 부활을 기대해 본다.